01 환절기를 보내며 생긴 질문
우리 아이들은 유럽에서 2년을 생활하는 동안 치과 외에는 의료기관을 찾지 않았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알레르기나 호흡기 증상으로 걱정하는 일이 있었다. 부모로서 그 차이를 느끼며, 생활환경과 건강을 돌보는 습관에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주변 가족들에게서는 진료를 받을 때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쉬면서 경과를 살피라는 안내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 가족이 직접 받은 진료 경험은 아니지만, 일상에서 무엇을 살피고 실천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그 차이를 어느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증상이 생긴 뒤의 대응뿐 아니라 평소의 생활을 돌아보는 일이 내게 더 중요해졌다. 필요한 진료를 받는 일과 함께, 집에서 건강을 돌보는 선택에도 관심이 갔다.
02 매대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다
그런 관심을 품고 바라보니 현지 매대의 갈색 병들이 새롭게 보였다. 흰 뚜껑을 씌운 병도, 금빛 뚜껑의 길쭉한 병도 있었다. 녹색과 크림색 라벨 위에는 식물의 이름과 그림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한국에서도 사용하는 익숙한 소재가 있는가 하면, 처음 보는 이름도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어떤 필요에서 이 제품을 고를까. 같은 식물을 다른 형태로 사용하면 쓰임은 어떻게 달라질까. 상품을 기획해 온 내게는 질문이 이어지는 매대였다.
내가 사용한 액상 제품들도 다시 살펴봤다. 타임이라는 식물 이름이 전면에 적힌 제품과, 마른기침용으로 소개된 제품이었다. 병 안에 담긴 액체라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제품을 이해하려면 라벨과 설명을 더 읽어야 했다.

03 같은 갈색 병에도 다른 쓰임이 있다
사진 속 Schoenenberger 타임 제품은 제조사에서 식물성 의약품으로 안내한다. Klosterfrau Reizhusten-Saft는 아이슬란드이끼 추출물을 사용한 의료기기로, 제조사는 점막에 보호막을 형성해 마른기침 자극을 완화하는 용도로 설명한다. 이 두 제품을 모두 식품이나 면역 시럽으로 부르면 그 차이가 가려진다.
나는 이 대목에서 형태보다 쓰임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위한 제품인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하는지, 누구에게 어떻게 쓰도록 안내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식물성 원료라는 공통점만으로 사용 대상과 역할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기침 증상을 돌보는 제품을 곧바로 감기의 원인을 없애는 제품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런 구분을 하고 나니, 매대에서 보이는 제품의 차이가 오히려 더 흥미로워졌다.
04 뒤집어 보니 와인이 적혀 있었다
또 다른 병의 뒷면에는 Bio-Weißwein 80%라는 문구가 보였다. 유기농 화이트와인이 원재료의 80%라는 뜻이다. 꿀과 계피, 식물 원료 등의 이름도 뒤를 이었다. 허브 제품이라는 첫인상만으로는 알 수 없던 배합이었다.

이 병은 JURA의 Hirschzungenkräutertrank로, 제조사 원재료 안내에도 화이트와인과 꿀 등이 기재되어 있다. 사진 속 같은 계열 제품의 앞면에는 와인 함유 음료라는 표시도 보인다. 앞서 살펴본 기침용 제품과는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그래서 이 매대의 병들을 한꺼번에 가족용 건강 시럽으로 소개할 수는 없다. 특히 아이에게 사용할 제품을 고를 때는 성인용 제품의 이미지나 식물 이름에 기대지 않고, 해당 제품의 사용 대상과 성분을 확인해야 한다.
내게 병을 뒤집어 보는 일은 바로 이런 차이를 발견하는 일이다. 앞면은 호기심을 만들고, 뒷면은 질문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준다.
05 익숙한 소재의 다른 가능성을 보다
내 관심은 낯선 식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아는 원료라도 어떤 부위를 쓰고, 어떻게 가공하고, 무엇과 배합하는지에 따라 제품을 기획하는 질문은 달라진다. 액상이라는 형태가 어떤 사용 장면과 연결되는지도 살펴보고 싶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클린라벨과 가치식품 관점의 상품기획이다. 원료와 제조 과정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 그리고 소비자의 생활에서 그 제품을 선택할 이유를 찾는 일이다. 자연에서 왔다는 인상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성분과 쓰임을 읽고 싶다.
유럽에서 판매된다고 곧바로 한국 식품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재와 부위인지, 필요한 자료와 공급 조건을 확인할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현지 제품의 치료 목적을 한국 식품의 설명으로 그대로 옮길 수도 없다. 그 확인 과정까지 포함해서 다음 가능성을 찾는 것이 기획자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06 오늘도 나는 병을 뒤집는다
처음에는 환절기를 보내는 우리 가족의 생활에서 시작한 관심이었다. 이제는 매대 앞에서 하나의 제품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하는 습관이 됐다. 어떤 식물을 담았는지, 왜 이 형태를 택했는지, 어떤 생활 속에서 쓰이는지 궁금해진다.
새로운 상품을 고민하는 셀러와 기업도 이런 질문을 한 번쯤 함께 던져보면 좋겠다. 익숙한 소재에서도 아직 충분히 살피지 않은 쓰임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한국 고객의 일상에 맞게 검토하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다.
유럽의 갈색 병을 뒤집어 보던 날, 내가 가져온 것은 몇 개의 식물 이름과 더 많은 질문이었다. 다음 제품의 시작이 될지도 모를 질문들이다.
뒤집어보세요. 답은 언제나 뒷면에 있습니다. — Bayern J
Bayern J | 기초의학을 공부하고 건강식품 업계에서 약 25년간 학술 업무와 상품·사업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유럽에서 원료와 제품을 탐색하며 클린라벨과 가치식품 관점의 상품기획을 이어가고 있다.

